사설.칼럼왜냐면 ‘AI 강국’ 위해서라도 뿌리산업 외면 말아야 [왜냐면]
- 수정 2025-07-09 18:46
- 등록 2025-07-09 17:16
김은영 | 한국폴리텍대 광명융합기술교육원 3D제품설계과 교수
요즘 정부나 언론에서 ‘첨단산업’이라 하면 대부분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바이오, 클라우드 기술을 떠올린다. 국가 예산도 이 분야에 집중되고, 청년들의 진로 선호도 역시 이쪽으로 쏠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첨단기술이 실제 제품을 만드는 기반산업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기구설계를 전공한 교수로서, 매 학기 학생들에게 기계요소, 3차원(3D) 모델링, 구조 설계 등 제품 개발의 전 과정을 가르친다.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수준을 넘어, 실제로 작동하고, 조립이 가능하며, 금형 제작까지 염두에 둔 구조로 설계하는 ‘현장형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뿌리산업’을 외면하고 있다는 불안을 떨칠 수 없다.
뿌리산업이란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열처리, 표면처리 등 제조 공정의 기초를 이루는 산업을 말한다. 이는 제품의 외형과 기능, 내구성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이자, 대한민국 제조업의 근간이다. 그러나 이 산업은 지금 급격한 고령화와 기술 인력 이탈, 청년 기피 현상으로 인해 붕괴 위기에 놓여 있다.
기구 설계에 재능을 보였던 제자 한명이 졸업 후 중소 설계업체에 입사했지만 2년 만에 퇴사했다. 회사가 성장할 기미가 없고, 주변으로부터 “왜 그런 데 가냐”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고정밀 부품을 설계·가공하는 기술임에도, 사회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는 일’로 치부된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설계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구조 분석을 자동화하려는 시도를 즐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도 금형을 실제로 가공하거나, 복잡한 열처리 조건을 맞춰 현장에서 품질을 확보할 수는 없다. 반도체를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이를 탑재할 기기의 외형과 내부 구조를 설계하고 생산하지 못하면 제품화는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반도체 완제품을 세계에 수출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고기능성 금형 소재, 초정밀 가공 설비, 고성능 공구류 등은 여전히 일본과 독일 등에서 수입하는 구조다. 기술 자립을 논하려면, 최첨단 ‘디지털 기술’ 전에 기초 제조 인프라부터 튼튼히 다져야 한다. 뿌리산업은 단지 낡은 산업이 아니라, 첨단기술을 현실로 구현하게 만드는 ‘현실화의 기술’이다.
교육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더욱 냉정하다. 뿌리산업 분야로 진출하려는 학생은 해마다 줄고, 정부의 정책적 관심도 옅어지고 있다. 뿌리산업 기반의 중소기업들은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으며, 숙련 설계 인력은 점점 노령화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조 기반은 점차 메말라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설계 교육은 디지털 도구와 아날로그 제조 기술의 균형 위에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구조를 최적화할 수 있도록 돕되,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가공되고 조립되는지를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지금 이 균형은 무너지고 있으며, 정책 역시 이를 바로잡는 데 소극적이다.
‘보이는 기술’만 강조되는 시대에, ‘보이지 않는 기술’을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는 점점 외면받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기술강국은 겉이 아니라 속에서 완성된다. 나사 하나, 기어 하나가 제대로 작동해야 전체 시스템이 움직이는 것처럼, 국가 산업도 기초가 튼튼해야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는 국가 정책이 제조업의 밑바닥, 뿌리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디지털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구현해주는 손의 기술, 기구의 지혜, 현장의 힘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Hankyoreh Media Group All Rights Reserved.
사설.칼럼왜냐면 ‘AI 강국’ 위해서라도 뿌리산업 외면 말아야 [왜냐면]
김은영 | 한국폴리텍대 광명융합기술교육원 3D제품설계과 교수
요즘 정부나 언론에서 ‘첨단산업’이라 하면 대부분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바이오, 클라우드 기술을 떠올린다. 국가 예산도 이 분야에 집중되고, 청년들의 진로 선호도 역시 이쪽으로 쏠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첨단기술이 실제 제품을 만드는 기반산업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기구설계를 전공한 교수로서, 매 학기 학생들에게 기계요소, 3차원(3D) 모델링, 구조 설계 등 제품 개발의 전 과정을 가르친다.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수준을 넘어, 실제로 작동하고, 조립이 가능하며, 금형 제작까지 염두에 둔 구조로 설계하는 ‘현장형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뿌리산업’을 외면하고 있다는 불안을 떨칠 수 없다.
뿌리산업이란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열처리, 표면처리 등 제조 공정의 기초를 이루는 산업을 말한다. 이는 제품의 외형과 기능, 내구성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이자, 대한민국 제조업의 근간이다. 그러나 이 산업은 지금 급격한 고령화와 기술 인력 이탈, 청년 기피 현상으로 인해 붕괴 위기에 놓여 있다.
기구 설계에 재능을 보였던 제자 한명이 졸업 후 중소 설계업체에 입사했지만 2년 만에 퇴사했다. 회사가 성장할 기미가 없고, 주변으로부터 “왜 그런 데 가냐”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고정밀 부품을 설계·가공하는 기술임에도, 사회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는 일’로 치부된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설계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구조 분석을 자동화하려는 시도를 즐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도 금형을 실제로 가공하거나, 복잡한 열처리 조건을 맞춰 현장에서 품질을 확보할 수는 없다. 반도체를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이를 탑재할 기기의 외형과 내부 구조를 설계하고 생산하지 못하면 제품화는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반도체 완제품을 세계에 수출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고기능성 금형 소재, 초정밀 가공 설비, 고성능 공구류 등은 여전히 일본과 독일 등에서 수입하는 구조다. 기술 자립을 논하려면, 최첨단 ‘디지털 기술’ 전에 기초 제조 인프라부터 튼튼히 다져야 한다. 뿌리산업은 단지 낡은 산업이 아니라, 첨단기술을 현실로 구현하게 만드는 ‘현실화의 기술’이다.
교육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더욱 냉정하다. 뿌리산업 분야로 진출하려는 학생은 해마다 줄고, 정부의 정책적 관심도 옅어지고 있다. 뿌리산업 기반의 중소기업들은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으며, 숙련 설계 인력은 점점 노령화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조 기반은 점차 메말라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설계 교육은 디지털 도구와 아날로그 제조 기술의 균형 위에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구조를 최적화할 수 있도록 돕되,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가공되고 조립되는지를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지금 이 균형은 무너지고 있으며, 정책 역시 이를 바로잡는 데 소극적이다.
‘보이는 기술’만 강조되는 시대에, ‘보이지 않는 기술’을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는 점점 외면받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기술강국은 겉이 아니라 속에서 완성된다. 나사 하나, 기어 하나가 제대로 작동해야 전체 시스템이 움직이는 것처럼, 국가 산업도 기초가 튼튼해야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는 국가 정책이 제조업의 밑바닥, 뿌리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디지털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구현해주는 손의 기술, 기구의 지혜, 현장의 힘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Hankyoreh Media Group All Rights Reserved.